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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14:1-10 믿음의 생각, 믿음의 말

 양병구(http://www.gconnuri.org)

 2017-06-19 오후 3:16:00  2850

 

 

14:1-10 믿음의 생각, 믿음의 말
QT하면 행복해집니다. 가을에도 QT하십시다.

1. 말씀을 향하여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격언은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 처럼 말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정주영 현대구룹 회장님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여 봐! 해봤어?’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시작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비보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어 이미 죽었는데도 잔 다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11:11-14) 이와 같이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인격이 밖으로 표출 되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 마음의 색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상태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품은 생각의 색깔에 따라 사물의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의 색안경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나 사물이 어둡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의 색안경으로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바라보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밝고 희망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현재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인격의 현 상태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2.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

1) 열 명의 비 신앙적이고 부정적인 보고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을 대표한 열 두 명의 지휘관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뒤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먼저 열 명의 지휘관들은 가나안 땅은 좋지만 가나안 사람들은 장대한 아낙자손들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합니다.’라는 비 신앙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13:27-29절의 말씀입니다.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13:27-29) 
     ‘
우리가 가나안 땅을 정탐해본 결과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고 심히 아름다운 땅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땅의 성읍이 견고하고 엄청나게 클 뿐만 아니라, 그 땅 주민들 중에서 매우 크고 강한 아낙 자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남쪽에는 아말렉사람들이 살고 있고, 산지에는 헷사람들과 여부스사람들과 아모리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지중해 해변과 요단강 주변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32-33에서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2-33)
    
‘10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이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악평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살고 있는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보고를 들었던 이스라엘 회중들의 반응에 대해서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 1-3절의 말씀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3)
    
10명의 지휘관들이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이스라엘 회중들이 소리를 높여 울부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 회중들은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왜 우리를 인도해 내어서 칼에 죽게 하려고 하느냐? 한 지휘관을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애굽사람들의 종살이를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도록 선동했습니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말에는 부정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 남의 흉허물을 들춰내는 말과 남에게 들은 말을 전하는 일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합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회중들이 소리를 높여 울부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열 명의 지휘관들이 보고한 부정적인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정적인 말을 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회중들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 회중들은 전적인 은혜로 출애굽시키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도록 서로 선동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들이 서로 부정적인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하게 만들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도록 서로 서로 선동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남의 이야기를 하거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이거나,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야기일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특히 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분단의 맨 앞에 앉았던 친구들을 앞으로 나오게 한 다음 선생님께서 종이에 쓴 메시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각 사람은 각 분단의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메시지를 귓속말로 전하게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맨 마지막 사람들에게 까지 귓속말로 메시지 내용을 전하게 한 다음 맨 마지막 사람은 앞에 사람으로부터 귓속말로 들었던 내용을 칠판에 적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맨 앞에 앉았던 한생에게 또 같은 내용을 보여주었었는데, 맨 나중에 들었던 학생들이 칠판에 기록했던 내용은 완전히 제각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녹음된 것처럼 똑같이 전할 수는 없습니다. 전하는 사람의 기억력이나 감정, 그리고 토시 하나가 더 들어가거나 빠지거나, 아니면 전후문맥을 빠뜨리고 이야기할 때 원래의 사실과는 완전히 내용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내용을 과장하게 되거나 왜곡함으로써, 그 당사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맙니다. 혹 그 말이 사실일지라도 남에게 덕이 되지 않을 말은 전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사람과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덕을 세우는 이야기, 이해해주고 위로하며 격려해주고 사랑하며 축복하면서 살아도 모자라는 인생, 아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이나 남에게 들은 말을 전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나머지 인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며 사랑하고 축복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권면합니다.

2) 두 명의 신앙적이고 긍정적인 보고 
     열 명의 지휘관들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이스라엘 회중들이 소리를 높여 울부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고 있을 바로 그때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으면서 말했습니다
. 6-9절의 말씀입니다.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6-9) 
     ‘
우리가 가나안 땅을 정탐해본 결과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 매우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 땅의 성읍들이 견고한 성으로 이루어진 것과 그 성읍들이 엄청나게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 땅 주민들 중에서 매우 크고 강한 아낙자손들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의 남쪽에는 아말렉사람들이 살고 있고, 산지에는 헷사람들과 여부스사람들과 아모리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지중해 해변과 요단강 주변에는 가나안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거역하지 맙시다.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 땅 백성들이 아무리 장대한 아낙자손들일지라도 그들의 보호자가 그들에게서 떠났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들의 밥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 같은 시간에 같은 사건을 똑같이 경험하고서도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열 명은 비 신앙적인 생각과 비 신앙적인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두 명은 믿음의 생각과 믿음의 눈으로 보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열 명은 자신들의 능력만 생각하고 할 수 없다고 실망하고 좌절했지만, 두 명은 자신들의 능력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무슨 차이 일까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인 눈과 믿음의 눈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고, 같은 직장생활을 하지만, 누구는 행복하게 살고 성장해가지만, 누구는 불행하게 살며 퇴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경 탓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탓을 하지만, 실상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은 긍정적인 눈, 믿음의 눈, 즉 우리들의 배후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믿음의 눈으로 사람과 사회와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1821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18:21)
    
배의 방향을 키가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인생의 방향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결정합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입술과 혀를 통해 내뱉는 언어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한 성당에서 한 어린아이가 신부님을 도와서 성찬을 준비하다가 그만 실수로 포도주가 든 그릇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버럭 화를 내면서 저리 나가라고, 너 같은 녀석 필요 없다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 때 신부님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성당을 뛰쳐나갔던 이 아이는 자라서 무신론자가 되었고, 마침내 철저한 공산국가의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대통령입니다.
    
그 동시대에 또 다른 한 어린아이가 신부님을 도와서 성찬을 준비하다가 그만 실수로 포도주잔을 땅에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린아이를 보았던 신부님이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너도 앞으로 큰 신부님이 되겠어, 나도 너만 한때는 그런 실수를 많이 했거든,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이렇게 신부가 되었잖아.” 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아이를 격려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축복해주었답니다. 그 때 그 신부님으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고 자란 이 아이는 나중에 유명한 플턴신대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주로 어떤 언어를 사용하십니까? 덕을 세우는 말입니까? 덕을 허무는 말입니까? 칭찬하는 말입니까? 헐뜯는 말입니까? 축복하는 말입니까? 저주하는 말입니까? 덕을 세우는 말,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 축복하는 말에 힘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말씀을 마치면서  
     인간은 늘 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 우리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말을 하지 않고 살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다 정당한 말을 하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듣지 말아야 될 말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래의 말에 뭔가를 더하거나 왜곡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덕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일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민수기 142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14:28).”
    
오늘의 결론인 이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다 듣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우리의 말에 대한 책임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것이며 창조적이고 사랑과 위로의 말에 대해서는 큰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한 말을 다 들으시고 우리가 말한 대로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의 생각과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축복하는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017년 6월 11일 GCOC주일낮QT설교

 

 
     

 

7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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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4:1-10 믿음의 생각, 믿음의 말     양병구 2017-06-19 2851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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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자기(人)를 위(爲)하는 자는 거짓(僞)된 자 [1]    심현보 2011-08-23 5137 239
64 DNA     한성도 2011-08-23 4823 216
63 따스한 커피 한잔     한성도 2011-08-22 4897 233
62 소박하게     한성도 2011-08-19 4640 230
61 더불어 살아가는     한성도 2011-08-18 4730 215
60 영안(靈眼)의 마음이 열리는 만큼씩 주 하나님을 만남으로 체험한다... [1]    심현보 2011-08-17 5452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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